방언의 은사가 사도들의 입에 임했는가, 아니면 청중의 귀에 임했는가?
질문 - 방언의 은사가 사도들의 입에 임했는가, 아니면 청중의 귀에 임했는가? 다시 말해서 사도들이 각각 다른 나라말로 설교를 했는가, 아니면 사도들은 이스라엘 말로 설교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말로 들었는가?
[답] 제자들이 이스라엘 말로 설교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말로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청중의 귀에 방언의 은사가 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행 2 :6) 들었다고 했으며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된 것에 대해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임을 강조해서 그들이 각각 다른 방언을 말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이 제자들을 ”새 술이 취하였다”(행 2 :13)고 조롱한 것을 보아서 방언의 주체가 청중이 아니라 제자들임을 알 수 있다.
베드로 한 사람이 이스라엘 방언으로 설교하면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기들의 방언으로 알아듣도록 그들의 귀에 방언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 편리 할텐데 왜 제자들이 각각 다른 말을 하도록 하셨을까?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주체를 확실히 구분하여, 제자들에게 성령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쪽은 청중이 아니라 제자들이었다. 성령의 역사가 누구에게 임했는가를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셨다. 그래서 제자들 자신들이 그들에게 임한 성령의 은사를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간접 체험으로가 아니라 직접 체험을 한 것이다.
(2) 만일 제자들이 이스라엘 말로 설교하고 청중이 각각 자기 나라말로 알아들었다면 신기한 현상이기는 해도 제자들에게는 어떤 권위도 돌아가지 않는다. 제자들의 역할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인 제자들이, 배운 일이 없는 15가지 이상의 방언으로 설교하자 다 놀라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임이 확실해졌다. 그러므로 그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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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오순절의 방언과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admin
- Q: 방언의 은사가 사도들의 입에 임했는가, 아니면 청중의 귀에 임했는가? admin
- Q: 오순절에 방언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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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오순절의 방언과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admin
A:
오순절의 방언과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오순절의 방언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바울의 책망을 받았다. 고린도 교회의 방언이 오순절의 방언과 같은 성질의 어떤 외국어였는가, 아니면 당시 희랍 신들의 제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황홀 상태에서의 지절거림이었는가 하는 것을 명확히 규명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바울 자신도 거기에 대해서는 확실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바울은 한결같이 방언에 대하여 "글로싸"란 헬라어를 써서 일단은 구분하는 것을 피했다.
고린도가 국제 무역도시였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주워 들은 외국어를 연결하여 방언이라고 자랑했는지도 모른다. 또 이교신 제사에 익숙했던 이방인 개종자들이 황홀경에서 나오는 지절거림을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와 성령의 은사라고 주장하면서 영적인 능력을 과시하려고 했을 가능성도충분히 있다.
방언도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이기는 하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에 방언에 대하여 권면한 내용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방언은 그것이 외국어이든 열광적인 ’지껄임’이든지 간에 성령의 은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지럽고 소란스러웠던 방언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에 예비하리요…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교회에서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 :7, 9,19).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일부 방언 현상을 찬성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방언이든지 간에 그 결과가 걱정스럽고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하는 이상, 그것이 성령 충만의 결과가 아님이 확실하므로 바울은 찬성할 수 없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바울은 사실상 고린도 교회의 일부 방언을 금하고 싶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잘라 말했다.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 :19). 그것은 그들의 방언은 성령 충만의 결과도 아니며 쓸데 없으니 하지 말라는 책망의 완곡한 표현이다. -
Q:
방언의 은사가 사도들의 입에 임했는가, 아니면 청중의 귀에 임했는가?
admin
A:
질문 - 방언의 은사가 사도들의 입에 임했는가, 아니면 청중의 귀에 임했는가? 다시 말해서 사도들이 각각 다른 나라말로 설교를 했는가, 아니면 사도들은 이스라엘 말로 설교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말로 들었는가?
[답] 제자들이 이스라엘 말로 설교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각각 자기 나라말로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청중의 귀에 방언의 은사가 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행 2 :6) 들었다고 했으며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된 것에 대해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임을 강조해서 그들이 각각 다른 방언을 말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이 제자들을 ”새 술이 취하였다”(행 2 :13)고 조롱한 것을 보아서 방언의 주체가 청중이 아니라 제자들임을 알 수 있다.
베드로 한 사람이 이스라엘 방언으로 설교하면 모든 사람들이 각각 자기들의 방언으로 알아듣도록 그들의 귀에 방언의 은사를 주시는 것이 편리 할텐데 왜 제자들이 각각 다른 말을 하도록 하셨을까?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주체를 확실히 구분하여, 제자들에게 성령의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쪽은 청중이 아니라 제자들이었다. 성령의 역사가 누구에게 임했는가를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셨다. 그래서 제자들 자신들이 그들에게 임한 성령의 은사를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간접 체험으로가 아니라 직접 체험을 한 것이다.
(2) 만일 제자들이 이스라엘 말로 설교하고 청중이 각각 자기 나라말로 알아들었다면 신기한 현상이기는 해도 제자들에게는 어떤 권위도 돌아가지 않는다. 제자들의 역할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인 제자들이, 배운 일이 없는 15가지 이상의 방언으로 설교하자 다 놀라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임이 확실해졌다. 그러므로 그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했다 -
Q:
오순절에 방언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admin
A:
오순절에 방언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제자들이 맨 처음 받은 성령의 은사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울이 성령의 은사 중 제일 마지막에 두거나 때로는 생략하기도 했던(롬 12 : 6-8; 엡 4 : 7-11) 그러한 방언이었다.
그것은 방언의 은사가 그 당시 그 환경에서 가장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한 15지역 이상에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여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향 말로 위대한 복음을 듣고 놀라 소리쳤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행 2 :8).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을 지내기 위하여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행 2 :5) 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시기는 예수의 메시야이심과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새로운 구원의 도리를 전 세계에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언어의 장벽이 있었다.
유대 땅을 떠난 지 오래되고 타향에서 태어난 유대인들(행 2 :8)과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언어에 익숙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언어의 이질성은 복음 선포에 큰 장애가 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도들의 부족을 보충하셨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일생 동안 노력해도 성취할 수 없었던 일을 한 순간에 해 주셨다. 사도들은 저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의 방언을 정확하게 말함으로 이제 해외에 복음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었다. 성령의 충만하심을 힘입어 ”하나님의 큰 일”(행 2 :11)이 그들의 모국어로 강력하게 전파되었다.
그것은 잠시 동안이나마 언어에 있어서 바벨탑 이전의 시대를 회복한 분위기를 맛보게 하였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방언의 은사를 주신 목적이었다. 방언의 은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수한 사정 아래서 주신 특이한 은사였다. - Q: 성경에서말하는 방언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admin
- Q: 음식물에 관한 교훈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가? admin
- Q: 거리낌만 없으면 아무 것이나 먹어도 되는가? admin
- Q: 믿음이 강한 자는 무엇이든지 다 먹을 수 있는가? admin
- Q: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있는가? admin
- Q: 음식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부정하던 것도 정하게 되는가? admin
- Q: 예수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admin
- Q: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admin
- Q: 전도서에는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admin
- Q: 구원받은 영혼이 하늘에 없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누구를 데리고 오시겠다는 것인가? admin
- Q: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이란 무엇인가?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