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7 15:45
제 16과 사람의 사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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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욥기 14장 10절)
세상에서 슬픔과 고통을 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슬픔보다 더한 슬픔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망은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가리지 않고 언젠가는 이르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누구나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사후 문제는 모든 종교가 중요하게 취급하는 교리의 요점이며, 철학이나 과학도 이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도 사망의 공포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사망의 공포를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사후의 형편을 충분히 알지 못하거나 사후의 형편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죽은 후에야 어떻게 된들 상관없다고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죽은 후의 형편이 어떠함을 앎으로써 그의 생존할 동안의 생활 태도가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영혼은 살아 있을까요?
사후의 문제는 경험으로 판단할 것이 못되므로 의견이 각각 다릅니다. 종교가 다르면 그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곧 천당에 간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혹은 연옥으로 가서 이 세상에서 마치지 못한 죄의 값을 다 갚도록 고통을 당한다는 연옥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사후 문제에 관한 의견이 각각이지만 이것을 요약하면,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육체를 떠난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 또는 죽은 자가 어떠한 형체로 생존을 계속하는가 하는 두 가지 문제입니다. 그런데 동서양의 각 종교를 살펴보면 모든 종교는 거의 다 영혼의 존재와 불멸을 믿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런 중에서 유독 성경만이 이것을 강하게 부인하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일반 기독교 역시 영혼 불멸설을 믿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입니다.
영혼 불멸설의 출처
이 기이한 일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의 미혹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4과에서 이미 연구한 바와 같이,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장 17절)고 하셨는데, 사단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세기 3장 4절)고 말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도록 하였습니다.
그 후로 사단은 계속 인류를 속여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주장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방해해 왔습니다. 우리가 만일 사단의 말을 믿는다면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에스겔 18장 4절)는 하나님의 엄숙한 말씀은 믿지 않게 될 것이요, 따라서 제멋대로 방종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구주의 필요를 느끼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사단은 바로 여기에 목적을 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영혼 불멸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장 16절).
이 말씀은 기독교의 중심 문제를 가장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유명한 구절입니다. 우리가 읽은 바와 같이 구원의 필요는 인간이 멸망하여 없어진다는 사실 위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불멸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는 것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믿는 것도 아주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참으로 영혼 불멸을 믿는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요 모순된 일입니다.
인체의 구성
사망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먼저 생명에 대하여 깊이 상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생명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장 7절).
이 말씀은 지극히 간단하기는 하지만 인체의 구성에 대하여 요점을 말한 것입니다. 처음에 사람은 흙으로 빚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즉 두뇌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신체의 기관이 그 기능을 발휘하는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치 전구에 전기가 통할 때에 빛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육체를 전구라고 하면 생명의 기운은 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이 연합하여 생령 곧 산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만일 전기가 끊어지면 전구만 남고 빛은 없어집니다. 그럴 때 그 빛은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없어지고 만 것입니다. 사람도 이와 똑같은 이치입니다. 전기와 같은 생명의 기운이 없어지면 죽는데, 그 때 남는 것은 생명의 없는 육체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반적으로 믿는 바와 같이 혼이나 영혼이 따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 영, 영혼 등의 근본 뜻
사망은 곧 생명의 반대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시편 104편 29절)라고 하였고, 솔로몬은 기록하기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도서 12장 7절)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신’이라고 번역한 말은 원문 성경 히브리어의 ‘루아흐’(Ruach)이라는 말인데, 호흡, 바람 등의 의미를 가기고 있습니다. 위에 인용한 시편의 ‘호흡’이라는 말과 전도서의 ‘신’이라는 말은 원어로는 똑같은 말이므로 신이라는 말에 특수한 의미를 포함시킬 수는 없습니다. 동양 언어로 신이라고 하면 육체를 떠나서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행동도 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성경적인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전도서 12장 7절의 ‘신’은 욥기 34장 14절의 ‘기운’,욥기 27장 3절의 ‘하나님의 기운’과 똑같은 원어를 번역한 말입니다. 그리고 욥기 12장 10절의 한국어 번역은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인데, 이 구절의 일문(日文) 구어역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생물의 목숨 및 모든 사람의 호흡은 그의 손안에 있다.”
즉 ‘혼’과 ‘영’을 ‘목숨’과 ‘호흡’이라 번역하였습니다. 원어에 충실하자면 일문 번역이 바른 번역입니다.
신약 성경 가운데 ‘영’ 또는 ‘영혼’이라 번역한 말은 고대 헬라어의 ‘프뉴마’(Pneuma)라는 말인데, 이것 역시 ‘바람’, ‘호흡’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루아흐’과 같은 의미입니다. 실례로, 야고보서 2장 26절의 ‘영혼’이라는 말을 ‘호흡’이라는 말로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영혼(호흡)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영’이나 ‘영혼’이라 한 말은 동양 사람들의 종래의 관념대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숨’이나 ‘호흡’이라는 의미로 생각하면 그 근본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본래 하나님께서 주셨던 ‘생명의 기운’ 즉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그 결과로 생활 기능을 잃고 육체가 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죽음의 상태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없다고 하면 그 이상 더 생각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성경에는 사람의 사후 상태가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단이 사람의 사후 상태에 대하여 여러 가지 그릇된 사상을 퍼뜨릴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예방책으로서 준비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사후 상태를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한번은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한복음 11장 1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죽음을 잠들었다고 말한 데가 53곳이나 되는데, 이것은 영원한 잠이 아니라 부활하는 날까지 자는 잠입니다. 그 자는 동안이 몇 천 년이 될지라도 아무 의식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에게는 잠깐 동안 자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만에 부활했는데 그는 죽었을 동안의 아무 경험도 말한 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과 같이 죽어 곧 천당에 갔다면 구태여 다시 부활시키실 필요도 없었을 것이요, 부활시키신다 해도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지 않고 “나사로야 내려오너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무덤에서 자다가 일어나 나온 것입니다. 아무리 독실한 신자라도 죽어서 곧 하늘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대중 앞에서 연설하면서 다윗의 죽음에 대하여 말하기를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다”(사도행전 2장 29, 34절)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곧 승천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사지낸 지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마리아에게 이르시기를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요한복음 20장 1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름
사람이 깊이 잠들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 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전도서 9장 5, 6절).
“산 자는 알되 죽은 자는 모른다”는 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의식과 감각이 완전히 없어져서 산 자의 세계에서는 소멸되고 맙니다.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되어 은혜를 갚거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욥이 이르기를 “그 아들이 존귀하나 그가 알지 못하며 비천하나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욥기 14장 21절)라고 하였습니다. 생전에 아무리 그 자녀를 사랑했을지라도, 죽은 후에는 그가 잘 되는지 못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또 시편 기자는 이르기를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시편 115장 17절)라고 하였으니, 아무리 독실한 신자라도 죽은 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할 것입니다. .
불사의 길
사도 바울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장 27절)라고 하였거니와 사람은 선인이나 악인이나 다 한번은 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불사의 성질, 즉 ‘죽지 않음’을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불사의 조건을 이행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명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장 16, 17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그 명령을 불순종했기 때문에 죽어야 할 인간이 되었고 또 그 소질과 품성을 받아 가지고 나온 인류도 하나님께 순종할 힘을 잃어버리고 사망의 줄에 얽매인바 되었습니다.
“죽지 않음”은 오직 순종이라는 조건하에서만 얻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에 나아갈 길을 막아 저희로 하여금 영생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불순종하는 죄 많은 인간이 오래 산다는 것은 오히려 불행을 더 지속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인간은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불사(영혼)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죽어야 할 불쌍한 인간에게 죽지 않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길은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디모데전서 6장 16절)는 하나님만이 여실 수 있는 길입니다. 즉 그가 독생자를 주심으로 아들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으로서 우리와 같은 육체를 쓰시고 세상에 오셔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그 몸을 드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킨 사람처럼 받으시는바 됩니다. 다시 말하면 믿는 그것으로 인하여 순종이라는 불사의 조건이 충족되고, 그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요한은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장 11, 12절)고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믿기만 하면 곧 불사의 몸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불사의 특권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취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루어집니다.